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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신문에 2022년 5월부터 연재되는 제임스강 목사의 ‘행복신앙세미나’ 시리즈
3. 행복이 형성되는 곳, 마음
미 일리노이대 심리학 교수인 에드 디너(Ed Diener)는 행복을 처음으로 과학적으로 연구하여 ‘행복학의 아버지’로 불립니다. 그는 대학생 시절인 1965년부터 행복을 연구하고 싶은 갈망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자는 행복하고 가난한 사람은 불행하다.’는 상식을 따라 부자가 되기 위해 애를 쓰는데, 이상하게 부자도 불행해할 때가 많고 농장의 가난한 일꾼일지라도 행복해하는 것을 보면서 ‘행복은 무엇인가?’란 의문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는 수십 년간 행복을 연구한 결과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상식과 달리 “행복은 삶에 대한 마음의 태도이다.”라고 결론을 지었습니다. 즉, 행복은 마음의 상태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지, 어떤 조건이나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실 사랑이나 믿음처럼 행복은 육체가 아닌, 마음에 관련된 것입니다. 그렇기에 맛있는 음식을 먹고, 좋은 옷을 입으며, 고급 주택에 살아도 불행할 수 있고, 그 반대의 형편 속에서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메달리스트의 행복도’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에는 금메달을 딴 선수가 가장 행복하고 그 다음은 은메달리스트, 그리고 마지막으로 동메달리스트 순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때 메달을 딴 선수들의 행복도를 조사했는데 은메달리스트보다 동메달리스트가 더 행복했던 것입니다. 은메달을 딴 선수는 행복도가 10점 만점에 4.8점이었고, 동메달을 딴 선수는 7.1점이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은메달을 딴 선수는 “아이고, 내가 조금만 더 잘했으면 금메달을 딸 수 있었는데...” 라면서 금메달을 못 딴 것에 마음을 두었고, 동메달을 딴 선수는 “휴, 잘못했으면 메달 하나도 따지 못했을 뻔했네...” 라면서 동메달을 딴 것에 마음을 두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지어냈는지 모르지만, 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빌라에 살며 살림만 하던 한 부인이 어느 날 오랜만에 동창회에 참석했습니다. 그런데 아파트에 사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도 꼭 아파트에 살고 싶다는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그때부터 부인은 남편에게 우리도 아파트로 이사 가자고 날마다 졸랐답니다. 아내의 성화에 못이긴 남편이 우여곡절 끝에 겨우 아파트를 장만해주자 부인은 행복해하며 아파트로 이사를 간 후 하루하루를 기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낡은 가구들이 눈에 자꾸 거슬렸습니다. 전에 살던 빌라에서는 괜찮았는데 새 아파트에는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불만을 가진 부인은 남편에게 가구를 새것으로 바꾸자고 또 조르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남편이 어렵게 돈을 구하여 가구를 모두 바꾸어주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가구가 바뀌니 이제는 오래된 가전제품들이 눈에 거슬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여전히 불만에 사로잡힌 부인은 다시 남편을 졸라 가전제품들까지 싹 바꾸었습니다. 아파트로 이사하고 가구와 가전제품도 모두 아파트에 어울리는 신제품으로 바꾼 부인은 ‘아, 이제 정말 행복하게 살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흡족한 마음으로 새로 구입한 푹신한 소파에 편안하게 누워 신 모델인 멋진 TV를 시청하고 있는데, 저녁에 되어 남편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데 남편이 아파트에 어울리지 않는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남편까지 바꾸려다(?) 결국 쫓겨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인도에는 이런 우화도 있습니다. 한 생쥐가 고양이가 너무 무서워 고민하다가 뛰어난 능력을 가진 마술사를 찾아가 도움을 구했습니다. 마술사는 겁에 질려 벌벌 떨고 있는 생쥐를 불쌍히 여겨 생쥐를 고양이로 바꾸어 주었는데, 고양이가 된 생쥐가 다음날 또 마술사를 찾아가 이제는 개가 무섭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마술사는 고양이가 된 생쥐를 다시 개로 바꾸어 주었습니다. 하지만 개가 된 생쥐가 다음날 또 마술사를 찾아가 이제는 사자가 무섭다고 하여 할 수 없이 마술사는 개가 된 생쥐를 사자로 바꾸어 주며 ‘이제 동물의 왕인 사자가 되었으니 더 이상은 무서워하지 않겠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사자가 된 생쥐가 다음날 또 찾아와 “이제는 사냥꾼이 너무나 무섭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까! 덩치 큰 사자가 되어서도 여전히 두려움 속에 있는 생쥐를 어이 없이 쳐다보던 마술사는 가만히 생각하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습니다. “너는 몸은 사자이지만 마음은 여전히 생쥐의 마음이구나. 그러니 다시 생쥐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다.” 결국, 생쥐는 원래의 모습으로 바뀌었답니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자기 위치나 조건이 바뀌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더 높은 위치, 더 좋은 조건 등 외부 형편의 변화가 행복의 조건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천국을 소개한 예수님은 먼저 “회개하라.”(마 3:2)고 하시며, 행복의 터닝 포인트는 회개 곧 마음의 교체임을 가르쳐주셨습니다. 행복은 마음에서 형성되기 때문입니다.
2. 행복의 방향 전환
세상에 존재하는 우리 모두가 마땅히 생각해야 될 부분은 ‘왜 사느냐?’입니다. 이는 인생의 목적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질문인데,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보면 아래와 같이 여러 질문들로 나타나게 됩니다. “왜 직장을 다니고 있습니까?” “왜 공부를 하고 있습니까?” “왜 사업을 하고 있습니까?” “왜 운동을 합니까?” “왜 여행을 합니까?” “왜 영화관이나 공연장에 갑니까?” “왜 사람들과 어울려 취미생활을 합니까?” 위의 질문들에 대한 답의 공통분모는 행복 추구입니다. 모든 사람이 무슨 일을 하든지 결국은 행복해지기 위해서 하기 때문입니다. 즉, 아무도 불행해지기 위해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류 최초의 과학자이자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로 유명한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과 삶의 목적에 대해 “인간은 끊임없이 행복을 추구하고, 행복을 인생 최대 목표로 삼고 있다.”라고 정의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모두가 평생 동안 행복해지기 위해 끊임없이 추구하며 살고 있지만 실제 행복을 누리고 사는 사람은 얼마나 되는지 입니다.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행복 추구는 헛되기 때문입니다. 오래 전에 행복에 대한 잡지를 만드는 출판사에서 독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특히, 독자들 중 서울의 잘 사는 지역의 부인들을 대상으로 행복에 대해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그때 첫째 질문인 “당신은 지금 행복합니까?”라는 질문에는 30퍼센트 정도만 “예. 지금 나는 행복합니다.”라고 답했습니다. 그런데 둘째 질문인 “당신은 항상 행복합니까?”라는 질문에는 아무도 답하지 못했습니다. 모두가 ‘어떻게 항상 행복할 수 있느냐?’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고나 실패 등 어떤 불행의 조건들이 찾아오면 그때마다 자신들이 누리고 있던 행복이 깨어지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세상에서 누리는 행복은 완전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소확행’ 즉,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도 누리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그만큼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행복이 불완전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행복은 세상이 주는 행복과 다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요 14:27)고 하셨습니다. 또한, 우물가에서 만난 여인에게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요 4:13,14)라고 하셨습니다. 완전하신 하나님이 주시는 행복 역시 완전합니다. 이 완전한 행복은 하나님으로부터만 받을 수 있습니다. 불완전한 세상에서는 절대로 얻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완전한 행복을 얻으려면 행복 추구의 방향을 바꾸어야 합니다. 즉, 세상에서 하나님으로의 방향 전환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완전한 행복을 인류에게 가르치고 전해주고자 세상에 오신 예수님이 가장 먼저 하셨던 말씀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4:17)인 것입니다. 회개는 방향의 전환이고 마음의 교체입니다. 즉, 천국이 가까운 것처럼 행복도 가깝지만 문제는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먼 것입니다. 다시 말해 행복을 추구하는 마음의 방향이 하나님이 아닌 세상이기에 하나님의 완전한 행복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자신이 어떤 행복을 추구하고 있는지를 돌아봐야 합니다. 만일 완전한 행복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면, 반드시 하나님을 향해 그 마음이 회개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행복의 방향 전환입니다.
1. 칼럼 연재를 시작하며...
주님의 은혜 가운데 행복신앙세미나를 연재하게 되어 감사합니다. 행복신앙세미나는 참되고 바른 신앙을 통해 완전하신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행복은 세상이 주는 행복과 다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세상에서 행복을 맛보지만, 그것은 어떤 조건에 따라 주어지는 행복이기에 불완전합니다. 특히, 하나님의 복은 번영신학이 추구하는 기복신앙과도 다릅니다. 하나님은 완전하신 분으로 완전한 행복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즉, 하나님께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범사에 복을 주셨더라.”(창 24:1)는 말씀처럼, 특정 조건이나 상황이 아닌 범사 곧 모든 일에 주시는 온전한 복인 것입니다. 이 복을 얻게 되면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살전 5:16~18)는 하나님의 뜻 가운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완전하신 하나님의 축복 속에 언제 어디서나 기쁨을 맛보며 모든 일에 감사할 수 있는 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나 불행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심지어 기독교인들 중에도 상당수가 하나님의 완전한 축복을 받지 못한 채 세상이 추구하는 불완전한 행복이나 기복신앙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본심을 정확히 알지 못하여 완전하신 하나님의 행복을 얻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담긴 유일한 책인 성경은 우리를 사랑하여 완전한 복을 주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본심이 분명하게 담겨져 있습니다. 성경의 시작인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가장 먼저 복을 주셨고, 성경의 중심을 차지하는 시편도 “복 있는 사람”(시 1:1)으로 시작하며, 예수님도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마 5:3)라고 하시며 복에 대한 말씀으로 가르침을 시작하셨습니다. 이는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렘 29:11)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평안과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설교의 황태자인 찰스 스펄전도 “주님의 유일한 목적은 당신의 행복이다”(All of Grace)라고 한 것입니다. 또한, 개혁 신앙의 구심점으로 체택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소요리문답에서 첫째 질문인 인생의 목적에 대한 답변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었으며, 둘째 질문의 답변 역시 “성경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즐거워할 것을 지시”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으로 더불어 완전한 행복을 누리는 것은 신앙의 터와 신앙생활의 기본이 되었지만, 19세기에 일어난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으로 정통 개혁주의 신앙이 퇴색되면서 하나님의 온전한 축복으로 말미암은 참된 신앙이 희미해져갔습니다. 그로 인해 신앙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도 점점 사라져갔고, 심지어 기독교인들조차 세상적인 축복을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인본주의에 입각한 번영신학이 일어나 잘못된 기복신앙으로 오히려 완전하신 하나님의 축복에서 더 멀어지게 했습니다. 감사하게도 주님께서 종교개혁 500주년인 2017년 10월에 종교개혁의 꽃을 아름답게 피웠던 종교 개혁자들과 믿음의 선진들의 발자취를 따라 완전하신 하나님의 축복에 초점을 맞춘 ‘Blessing of God Mission’을 영국에 허락하셨습니다. 2019년부터는 한국에 ‘행복신앙연구소’ 라는 이름으로 상담소를 허락하시고 완전하신 하나님의 축복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특히, 유럽 대표 한인신문인 유로저널에 ‘행복나침반’ 칼럼을 연재케 하신 주님께서 이제 기독교신문에도 칼럼 연재를 허락하셨습니다. 주님의 은혜 가운데 연재되는 이번 칼럼을 통해 완전하신 하나님의 완전한 축복을 우리 모두가 누리게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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